양준혁은 다음 해에도 타석에 있었습니다
특유의 스윙보다 오래 남는 것은 해마다 이어진 안타였습니다. 삼성으로 돌아온 양준혁의 커리어와 꾸준함의 다른 얼굴을 돌아봅니다.
자세를 따라 해 보고 싶던 타자
양준혁을 떠올리면 특유의 스윙이 먼저 생각납니다. 타격 뒤에 두 팔이 크게 올라가던 모습입니다. 야구를 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만세 타법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었고, 선수의 얼굴을 자세히 몰라도 동작은 알아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좋은 타자는 성적표에 이름을 남기기도 하지만 몸짓 하나를 팬의 기억에 남기기도 합니다.
롯데 팬에게 그 스윙은 자주 반갑지 않은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타구가 외야로 빠지면 우리 투수가 무엇을 잘못 던졌는지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양준혁의 타석을 보면 힘껏 치는 동작과 실제 안타를 만드는 능력이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크게 휘두른다는 인상만으로는 설명이 끝나지 않는 타자였습니다.
젊을 때는 눈에 보이는 특이한 자세가 재미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그 자세로 얼마나 오래 좋은 기록을 남겼는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기억하기 쉬운 스윙을 가진 선수는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스윙을 해마다 상대 투수가 경계해야 하는 무기로 남기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잘했던 한 해 다음에도 이어진 기록
양준혁은 1993년 프로에 데뷔한 해에 신인왕과 타격왕을 받았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가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는 그 첫해가 혼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타석이 이어졌고 안타가 쌓였습니다. 시작의 화려함을 오랜 시간의 기록으로 바꾸었습니다.
통산 2,318안타와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라는 기록을 함께 보면 그 길이가 실감납니다. 안타 백 개를 한 번 채우는 것과 다음 해에도 다시 채우는 일은 다릅니다. 지난 시즌의 안타는 새 시즌 기록표에 미리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매년 다시 타석에 서서 하나씩 쌓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저는 이런 연속 기록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멈춥니다. 달력으로 몇 년을 넘겼다는 사실보다 그동안 필요한 자리를 계속 지켰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선수에게는 상대 투수도 달라지고 몸의 상태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같은 이름으로 찍힌 안타 뒤에 같은 조건이 반복된 것은 아닐 겁니다.
꾸준하다는 말은 때로 특별한 장면이 없다는 뜻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양준혁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반대입니다. 새 시즌마다 다시 좋은 타자가 되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한 번의 전성기를 길게 늘여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 해의 경쟁에서 결과를 거듭 만든 것입니다. 평범하게 들리는 말 안에 쉽지 않은 일이 들어 있습니다.
삼성의 이름만으로 다 적을 수 없는 이력
양준혁은 삼성뿐 아니라 해태와 LG에서도 뛰었습니다. 지금은 삼성의 영구결번 10번으로 떠올리게 되지만 커리어 중간에는 다른 유니폼을 입은 시간이 있습니다. 한 팀의 전설이라는 말 때문에 실제로 걸어온 길까지 한 가지 색으로 칠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여러 시절을 함께 보아야 돌아온 선수의 의미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익숙한 선수가 다른 팀에 있는 모습을 보면 팬의 시선이 잠깐 멈춥니다. 이름과 얼굴은 아는데 유니폼의 색이 다릅니다. 그 낯섦이 지나면 다시 상대 타자로, 혹은 새로운 우리 팀 타자로 경기를 보게 됩니다. 선수는 팬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다음 타석을 준비해야 합니다.
삼성으로 돌아온 뒤의 양준혁을 생각하면 그래서 단순히 원래 자리에 계속 있던 선수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떠났던 시간까지 가진 타자였습니다. 좋은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좋은 기록을 내야 한다는 요구가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팬에게는 익숙함이지만 선수에게는 매년 새 경쟁이라는 점을 잊기 쉽습니다.
다음 해에도 있다는 믿음의 값
시즌이 시작될 때 중심타선에 익숙한 이름이 있는 것은 팬에게 큰 안정감입니다. 올해 몇 할을 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타석에서 무언가를 해 줄 사람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양준혁은 오랫동안 그런 기대의 대상이었던 타자입니다. 오래 보았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당연하게 얻기 어려운 믿음입니다.
은퇴하고 나면 그 당연함이 사라진 자리를 보게 됩니다. 이제 새 시즌을 시작해도 기록이 더해지지 않습니다. 통산 숫자는 멈추고 예전 경기를 다시 읽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양준혁의 이름 옆에 2,318이라는 숫자가 놓여 있다는 것은 많은 안타를 쳤다는 뜻이면서, 이제 그 기록을 완성된 커리어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삼성의 10번은 그 긴 반복을 기억하는 번호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첫해만 기념하는 것도, 특정 경기의 홈런만 남기는 것도 아닙니다. 매해 상대 투수가 준비해야 했던 타자, 시즌이 바뀌어도 다시 안타를 만들던 사람이 그 안에 있습니다. 특유의 스윙은 그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쉬운 입구일 것입니다.
지금 양준혁의 옛 타격 장면을 보면 여전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올라가는 두 팔입니다. 다만 그 뒤에 생각 하나가 더 붙습니다. 다음 해에도 저 타석에 있었고, 그다음 해에도 다시 자기 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이를 먹고 나니 화려한 자세만큼 그 반복이 멋있어 보입니다. 오래 야구를 보며 달라진 제 감상입니다.
이미지 출처
- 은퇴 후 장학재단 행사에 참석한 양준혁 — acrofan.com, CC BY-SA 3.0.
- 배트와 야구 글러브 — Matt Benson, Unsplash License.
- 대구의 야구장 풍경 — 0xb200a9e8b2c, CC BY-SA 4.0.
-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 Mark Tegethoff, Unsplash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