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 열전

선동열이 나오기 전에 해 두어야 했던 일

상대 팀 팬에게는 등판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급해지던 투수. 해태 시절 선동열의 압도적인 기록과 타이거즈에 남은 기억을 돌아봅니다.

이름을 듣고 점수판부터 보던 투수

KIA 감독 시절의 선동열

선동열이 생각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해태의 유니폼이다. 지금은 KIA로 이어지는 타이거즈의 역사 속에서 그를 이야기하지만, 내가 선수로 기억하는 선동열은 해태의 투수다. 나중에 감독으로 보았던 모습과 선수 시절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오래 야구를 본 사람의 머릿속에는 같은 이름에도 여러 시절의 얼굴이 들어 있다.

롯데를 응원하던 입장에서 해태는 쉽게 넘기 어려운 팀이었다. 그 가운데 선동열이 있다는 사실은 특별한 부담이었다. 등판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타자 이름보다 점수판을 먼저 보게 되는 느낌이었다. 아직 따라갈 수 있는 점수인지, 그가 나오기 전에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물론 기억은 실제 경기보다 장면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선동열도 실점을 했고 패전도 있었다. 모든 공이 스트라이크였던 것도, 모든 타자가 삼진을 당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오래 남는 인상은 상대가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쪽이었다. 한 투수가 경기 결과뿐 아니라 경기를 기다리는 팬의 마음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그를 보며 알게 됐다.

기록을 다시 보면 기억에 이유가 생긴다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선동열은 KBO 리그에서 통산 평균자책점 1.20을 남겼다. 숫자를 보고도 잠깐 멈추게 된다. 한두 경기의 성적이 아니라 여러 시즌을 합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느꼈던 어려움이 기록표 안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셈이다. 타자들이 쉽게 점수를 내지 못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보여 준다.

해태에서 보낸 11시즌 동안 그는 선발로도, 마무리로도 던졌다. 통산 146승과 132세이브라는 서로 다른 기록이 한 선수의 이름 옆에 놓여 있다. 경기의 앞을 책임지던 투수가 뒤를 지키는 역할까지 맡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팬은 긴 이닝을 지배하던 선발을 기억하고, 다른 팬은 추격의 문을 닫던 마무리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그를 한 가지 모습으로만 기억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리어가 이어지는 동안 맡은 자리가 달라졌지만, 상대가 느끼는 무게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선발과 마무리는 단순히 던지는 이닝 수만 다른 역할이 아니다. 그 차이를 지나면서도 존재감을 남겼다는 사실이 그의 기록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런 숫자를 오늘의 선수에게 그대로 요구할 생각은 없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고 역할을 나누는 방식도 달라졌다. 기록은 비교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차이를 지워 주지는 않는다. 다만 선동열이 자기 시대에 어떤 투수였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그 숫자만큼 분명한 단서도 드물다.

무서웠던 팀을 나중에 이해하는 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어렸을 때 해태가 강한 이유를 길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유명한 타자들이 있었고, 큰 경기에서 잘하는 것 같았고, 선동열이 있었다. 지금은 투수 한 명으로 팀의 우승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타선과 수비, 다른 투수들, 긴 시즌을 운영한 사람들의 몫이 함께 있었다. 선동열이 돋보였다는 사실과 해태가 팀으로 강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상대 팀 팬으로 경기를 볼 때는 그런 부분까지 차분히 생각하기 어렵다. 우선 우리 팀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상대의 좋은 수비는 아깝고, 상대의 좋은 공은 얄밉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얄미움이 인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때 내가 얼마나 어려운 상대를 보고 있었는지 나중에야 제대로 읽는 것이다.

선동열의 옛 투구를 보면 그래서 두 가지 마음이 같이 든다. 롯데 타자가 저 공을 쳐 줬으면 하는 어린 팬의 마음과, 참 대단한 투수였다는 지금의 마음이다. 응원팀은 바뀌지 않았는데 야구를 보는 자리는 조금 넓어진 셈이다.

그가 이후 일본 무대로 건너갔다는 사실까지 떠올리면 한 선수의 커리어가 더욱 길게 보인다. 익숙한 리그에서 남긴 성취가 다음 무대의 모든 결과를 미리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대단한 선수도 다른 환경에서 다시 자기 야구를 해야 한다. 국내에서의 기록만 읽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도전의 시간이 뒤에 이어져 있었다.

18번을 남긴다는 것

미국 VyStar Ballpark의 야간 경기

타이거즈의 18번을 보면 선동열을 떠올리는 이유는 단순히 기록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그 번호를 보며 경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팀 이름과 구장 풍경이 달라져도 어떤 숫자는 지난 시간을 연결한다. 지금의 팬이 예전 선수의 이름을 알게 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영구결번을 볼 때마다 선수의 성적과 팬의 기억이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통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고, 추억만으로는 놓치는 사실도 있다. 기록을 확인하고 다시 장면을 떠올리면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 줄어든다. 선동열은 그런 식으로 다시 볼 때마다 다른 부분이 보이는 선수다.

젊을 때는 그가 나오기 전에 점수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왜 그 생각이 그렇게 자연스러웠는지 알 것 같다. 마운드에 올라오기 전부터 이미 경기에 영향을 주는 이름이었다. 상대의 기대를 좁히고 자기 팀의 믿음을 넓히는 투수였다.

오래된 경기는 결과를 알고 보아도 재미가 있다. 승패를 새로 확인하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알아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선동열을 다시 보면, 어린 롯데 팬이 느꼈던 답답함에도 제법 정확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 확인: KBO 공식 자료


이미지 출처

  1. KIA 감독 시절의 선동열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광주MBC), CC BY 3.0.
  2.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 Mark Tegethoff, Unsplash License.
  3.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 Kastrot, CC BY-SA 4.0.
  4. 미국 VyStar Ballpark의 야간 경기 — Keiteay,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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