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 열전

부산의 여름에는 아직 자이언츠가 있습니다

1982년의 출발과 두 번의 우승, 사직의 응원까지. 롯데 자이언츠를 오래 응원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돌아봅니다.

팀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도시

사직야구장의 관중석과 그라운드

오래 야구를 보다 보면 구단 이름을 듣는 순간 함께 떠오르는 풍경이 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라면 저는 부산의 여름부터 생각합니다. 저녁에도 좀처럼 식지 않는 공기, 경기 시작 전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금세 말이 길어지는 분위기 말입니다. 야구장이 도시와 따로 떨어져 있는 장소 같지 않은 팀입니다.

롯데는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부산을 연고로 출발한 자이언츠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기록표에서는 짧은 한 줄이지만 팬에게는 꽤 긴 의미를 가집니다. 부모가 응원하던 이름을 자녀가 그대로 부르고, 오래된 유니폼을 꺼내도 어느 팀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구단의 긴 역사가 늘 좋은 성적으로 채워진 것은 아닙니다. 기대가 컸던 봄과 아쉬웠던 가을이 같이 쌓였습니다. 그래도 부산 야구를 우승 횟수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이 빠집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전날 경기를 꺼내고, 처음 만난 사이에도 타순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생활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두 번의 우승은 서로 다른 얼굴로 남았습니다

최동원을 추모하는 11번이 새겨진 사직야구장 그라운드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1984년과 1992년에 찾아왔습니다. 1984년을 이야기할 때 최동원을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네 번의 승리를 거둔 투수를 보며, 팬들은 한 선수가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질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지금의 투수 운용으로 그대로 옮겨 놓기 어려운 시대였다는 점까지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2년에는 또 다른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염종석과 박정태 같은 이름을 떠올리면 1984년의 장면과는 다른 야구가 눈앞에 놓입니다. 같은 자이언츠의 우승이라도 주인공과 팀의 표정은 달랐습니다. 저는 그 차이가 좋습니다. 과거의 영광이 한 사람의 전설에만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 선수들에게도 이어졌다는 뜻이니까요.

두 해를 나란히 놓으면 롯데 팬들의 대화가 왜 길어지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는 첫 우승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누구에게는 두 번째 우승이 학교를 다니던 때의 기억입니다. 같은 팀을 응원해도 마음속 기준이 되는 선수와 경기는 다릅니다. 구단 역사는 결국 그런 개인의 달력이 겹쳐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최동원의 투구를 중심으로 1984년을 보고, 염종석과 박정태의 이름을 따라 1992년을 보면 같은 팀의 우승에도 다른 표정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한 시대의 영웅을 다음 시대 선수의 기준으로만 삼으면 새 얼굴의 장점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옛 우승을 이야기하다가도 지금 막 기회를 얻는 선수의 이름을 함께 꺼내고 싶습니다. 기억할 이름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응원의 재미이기 때문입니다.

사직의 목소리는 성적표 밖에도 남습니다

최동원의 롯데 영구결번 11번 도안

롯데의 특징을 묻는다면 사직의 응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 같이 노래하고, 좋은 수비 하나에도 크게 반응하고, 답답한 순간에는 탄식도 숨기지 않는 모습입니다. 야구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관중석의 움직임을 보고 지금 중요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있습니다. 경기와 응원이 서로의 온도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그렇다고 롯데 팬을 늘 시끄럽고 성급한 사람들로만 그리면 섭섭합니다. 기록을 꼼꼼히 읽는 팬도 있고, 어린 선수가 성장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는 팬도 있습니다. 최동원의 등번호 11번이 남기는 무게처럼, 크게 외치지 않아도 오래 간직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한 구단의 응원 문화에는 그만큼 여러 표정이 있습니다.

저는 사직의 매력을 승리한 날에만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아웃 뒤에도 경기 이야기가 쉽게 끝나지 않는 데서 팀과 도시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물론 져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기기를 바라기 때문에 다음 선발을 확인하고 다음 경기를 기다립니다. 그 마음이 하루짜리 흥분을 넘어 오랜 습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팀에도 새로운 이야기는 생깁니다

사직야구장에서 롯데를 응원하는 관중

롯데를 소개하는 글은 자칫 오래된 우승 이야기로만 끝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이대호를 비롯해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나왔고, 새로운 얼굴들이 부산의 타석과 마운드를 이어받았습니다. 우승 트로피가 추가되지 않은 기간을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처럼 지워 버리면, 그 선수들을 응원했던 팬들의 계절도 함께 사라집니다.

처음 롯데 야구를 보는 분이라면 옛 명승부와 지금 뛰는 선수들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최동원의 이름이 왜 특별한지 알면 관중석의 기억을 이해하게 되고, 오늘 처음 선발로 나선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면 다음 이야기가 생깁니다. 역사와 현재가 이어질 때 응원하는 팀이 단순한 순위표의 한 칸보다 가까워집니다.

나이를 먹으며 야구를 보면 기다림의 길이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롯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다음 시즌을 말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부산의 여름에 자이언츠가 있다는 것은 그런 일일지 모릅니다. 지난 경기에 할 말이 많으면서도, 결국 다음 경기의 첫 공을 다시 기다리게 되는 일 말입니다.

기록·연혁 참고: 자료 1 · 자료 2


이미지 출처

  1. 사직야구장의 관중석과 그라운드 — Cheolstar, CC BY-SA 3.0.
  2. 최동원을 추모하는 11번이 새겨진 사직야구장 그라운드 — 히히히, CC BY-SA 3.0.
  3. 최동원의 롯데 영구결번 11번 도안 — Nudimmud, CC BY 3.0.
  4. 사직야구장에서 롯데를 응원하는 관중 — 히히히,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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