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의 타석에서 알게 된 포수의 무게
마스크를 벗고 타석에 들어서던 삼성의 이만수. 1984년 타격 3관왕의 기록과 함께, 공격과 수비를 모두 맡았던 포수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삼성의 타순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던 이름
어린 시절 삼성 경기를 보면 타자들의 이름부터 눈에 들어왔다. 누가 얼마나 잘 치는지 세세한 숫자는 몰라도, 방망이가 만만치 않은 팀이라는 느낌은 있었다. 그 가운데 이만수는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수비할 때는 얼굴이 마스크 뒤에 있다가 공격할 때는 타석의 중심으로 나오는 선수였다.
롯데 팬이어서 삼성의 좋은 타자를 편하게 볼 수만은 없었다. 상대 팀에서 잘 치는 선수는 칭찬보다 경계가 먼저 나온다. 이만수가 나오면 조용히 지나가는 타석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오래 야구를 보다 보니 그런 선수일수록 나중에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내가 응원한 팀을 어렵게 했다는 것 자체가 그 선수의 힘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이만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타석과 포수석이 같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라는 쪽이 더 크게 보였다. 하지만 한 경기를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그 방망이를 들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공을 받아야 했는지도 생각하게 됐다.
세 부문의 맨 위에 같은 이름이 있었다
이만수는 1984년 타율, 홈런, 타점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KBO 리그 최초의 타격 3관왕이었다. 정확하게 맞히는 일과 멀리 보내는 일, 주자를 불러들이는 일이 한 시즌에 같은 이름으로 모였다. 타격 기록을 각각 따로 읽기 시작하면 이 성취가 더 크게 느껴진다. 한 가지 잘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 종류의 결과를 함께 만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세 시즌 연속 홈런왕이었고, 1983년에는 정규시즌 MVP를 받았다. 이런 기록을 다시 보면 어린 시절 삼성이 강하게 느껴졌던 기억에 근거가 생긴다. 그저 유명한 선수가 많은 팀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 시대의 타격 기준을 만든 선수가 타선에 있었다.
다만 오늘의 경기 수와 구장 환경, 투수 운용을 그대로 가져와 옛 숫자에 덧씌우고 싶지는 않다. 그 시대의 선수는 그 시대의 야구 속에서 읽는 편이 맞다. 내게 중요한 것은 지금 누구와 몇 개 차이가 나는지가 아니라, 당시 팬들이 어떤 타석을 기다렸는지다. 이만수는 그 기다림을 만들어 낸 타자였다.
기록표에서는 세 부문의 1위가 짧게 적힌다. 그러나 한 시즌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수많은 타석을 지나야 한다. 잘 맞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아무것도 되지 않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숫자를 보지만 선수는 그 숫자가 완성되기 전의 날들을 하나씩 살아냈다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마스크를 쓴 시간까지 생각하게 된다
포수를 보기 시작한 것은 야구를 한참 본 뒤였다. 처음에는 공을 던지는 투수와 치는 타자만 눈에 들어왔다. 포수는 공을 받는 자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를 오래 보면 그 자리가 얼마나 바쁜지 알게 된다. 낮게 들어오는 공을 막고, 주자의 움직임을 보고, 투수와 뜻을 맞추면서 다음 공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수비를 마친 선수가 다시 방망이를 들고 나온다. 이만수의 타격 성적을 포수라는 자리와 함께 읽으면 숫자의 무게가 달라진다. 힘 좋은 타자였다는 설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던 시간과 타석에서 보여 준 힘이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었다.
포수가 훌륭하면 모든 투수가 좋아진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경기의 결과를 한 자리의 공으로만 돌리는 것도 맞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포수가 하루 동안 감당해야 하는 일을 생각하면, 공격에서도 팀의 중심이 된 선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나는 이만수의 기록을 읽을 때 그 수고를 빼고 싶지 않다.
몸을 쓰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보인다. 예전에는 강해 보이는 모습에서 힘만 읽었다면, 이제는 그 힘을 매일 꺼내야 하는 피로도 함께 떠올린다. 오래된 야구를 다시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경기 결과가 바뀌지 않아도 보는 사람의 시선은 바뀐다는 점이다.
기억은 포지션 하나를 넓혀 준다
이만수를 떠올릴 때 삼성의 22번이 함께 생각난다. 영구결번은 숫자를 남기는 방식이지만, 나는 그 숫자 안에 수비와 공격의 두 얼굴이 같이 들어 있다고 느낀다. 공을 받던 사람과 공을 멀리 보내던 사람이 같은 선수였다는 사실이다. 그 두 모습을 연결해 보게 해 준 이름이 이만수였다.
오래된 스타를 이야기하면 자꾸 최고였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누가 더 잘 쳤고, 누구의 수비가 더 좋았는지 따지는 것도 야구의 재미다. 다만 모든 기억을 순위표로 끝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수는 한 포지션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내게 이만수는 포수를 그런 자리로 보게 만든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그의 타석을 떠올릴 때는 그 직전의 수비도 같이 생각해 본다. 방망이를 들기 전에는 마스크를 썼고, 공격이 끝나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 한 시즌이 되고 긴 커리어가 됐다.
어릴 때는 이만수가 안 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롯데 팬이었으니 당연했다. 지금은 그 시절에 그렇게 묵직한 상대 타자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야구를 오래 본 즐거움으로 남아 있다. 응원하지 않았던 선수에게도 기억의 한 자리를 내어 주게 되는 것. 나이 든 야구팬이 얻는 것은 아마 그런 마음일 것이다.
기록 확인: KBO 공식 자료
이미지 출처
- 대구의 야구장 풍경 — 0xb200a9e8b2c, CC BY-SA 4.0.
- SK 감독 시절의 이만수 — OSEN SPORTS, CC BY 3.0.
- 야구 글러브의 앞면과 뒷면 — Jeremy Kemp, Public domain.
- 배트와 야구 글러브 — Matt Benson, Unsplash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