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가 지켜 주던 경기의 마지막
선발의 승리와 마무리의 세이브를 함께 쌓은 투수. MBC 청룡에서 LG 트윈스로 이어진 김용수의 시간과 잠실의 마지막 아웃을 돌아봅니다.
야구는 마지막 아웃까지 봐야 한다
오래 야구를 본 사람에게 마지막 아웃은 조금 특별하다. 점수 차가 넉넉해도 끝나기 전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날이 있고, 지고 있어도 마지막 공격이 남아 있으면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는 날이 있다. 롯데를 응원하며 살아온 내게도 익숙한 시간이다. 밥을 먹다가도 주자가 나가면 숟가락을 잠깐 내려놓게 되는, 그런 야구의 시간 말이다.
김용수는 그 마지막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투수다. 상대 팀 팬에게 그의 등판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기회가 많지 않다는 느낌이 먼저 왔다. 투수가 바뀌었을 뿐인데 같은 한 점 차가 조금 더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반대로 LG 팬에게는 그 이름이 어떤 안도감이었을지, 지금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팬이 느끼는 신뢰는 실점이 없다는 보증과 다르다. 믿는 투수도 맞을 수 있고, 잘 던진 공이 안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중요한 순간에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김용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모든 경기를 지켰다고 말하는 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경기의 끝을 그에게 맡기고 싶어 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일에 가깝다.
두 종류의 기록을 한 이름으로 읽는다
그는 MBC 청룡에서 시작해 LG 트윈스로 이어지는 커리어를 보냈다. 유니폼의 이름이 바뀌는 사이에도 같은 도시에서 야구를 이어 간 선수다. 오래된 청룡의 모습과 줄무늬 유니폼이 한 사람의 기억 안에 함께 들어 있다. 옛 사진을 볼 때마다 팀의 역사는 이름을 바꾼 날에 딱 잘라 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용수는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100승과 200세이브를 함께 달성했다. 나는 이 기록을 볼 때 합계보다 두 항목 사이의 거리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선발로 경기를 시작하는 일과 마무리로 끝내는 일은 준비하는 리듬부터 다르다. 정해진 등판을 기다리며 긴 이닝을 맡는 자리와, 경기 흐름 속에서 짧고 급한 승부에 들어가는 자리는 같은 투수의 일이어도 느낌이 다르다.
물론 승리가 모두 선발승이라는 뜻은 아니다. 기록의 이름만 보고 실제 역할을 단순하게 나누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그래도 그의 커리어에 선발과 구원의 시간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 가지 모습만으로 그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어떤 팬은 첫 공을 던지던 김용수를, 다른 팬은 마지막 아웃을 잡던 김용수를 더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선수가 팀에 필요한 자리를 오래 맡는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익숙한 역할을 잘하는 것과 다른 역할에서도 자기 공을 던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기록표의 두 숫자를 함께 읽으면 김용수가 팀 안에서 보낸 시간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오래 있었다는 사실에 더해, 서로 다른 상황에서 필요했던 선수였다는 뜻이 남는다.
두 번의 가을에 같은 이름이 있었다
1990년과 1994년,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MVP는 모두 김용수였다. 서로 다른 두 가을의 끝에 같은 이름이 놓여 있다. 정규시즌을 잘 치르는 일과 우승을 결정하는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은 이어져 있으면서도 같지는 않다. 그래서 두 번의 한국시리즈 MVP라는 기록은 그의 커리어 안에서 따로 눈길을 붙잡는다.
나에게 1990년대 야구는 이제 결과만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무렵의 유니폼과 중계 화면, 익숙했던 선수 이름이 함께 떠오른다. 당시에는 우리 팀 성적이 먼저였으니 다른 팀의 우승을 차분하게 감상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좋은 팀이 우승을 완성하는 장면에는 응원팀을 넘어 남는 것이 있다.
특히 투수가 마지막 공을 던진 뒤 주변의 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그렇다. 그때까지는 각자 맡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오랜 시즌이 짧은 장면으로 접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용수의 기록을 읽으면 그 장면을 기다렸을 LG 팬들이 생각난다. 숫자 뒤에 관중석의 시간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한 투수에게 우승의 공을 전부 돌릴 수는 없다. 득점을 만든 타자와 아웃을 보탠 수비, 그 앞의 이닝을 견딘 동료가 있었다. 김용수가 큰 경기에서 남긴 성취도 그 팀의 야구 안에서 읽을 때 더 잘 보인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한 영웅이라는 설명보다, 함께 만든 승리를 끝까지 이어 준 선수라는 말이 나는 더 좋다.
41번 앞에서 생각하는 믿음
잠실에서 LG의 영구결번 41번을 보면 기록보다 먼저 한 투수의 역할이 떠오른다. 오늘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자기 몫을 맡을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다. 세이브라는 숫자는 짧게 적히지만, 그 숫자가 쌓이는 동안 팬이 보낸 시간은 길다. 한 타자 한 타자 마음을 졸였던 저녁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세이브 부문 정상에 세 차례 올랐다는 기록도 결국 그런 저녁들이 이어진 결과다. 다만 팬의 기억에는 제목이 붙지 않은 평범한 경기들도 남는다.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날, 꼭 필요한 아웃을 잡아 준 투수의 얼굴 말이다. 스타의 커리어는 큰 경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야구에서 꾸준함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매번 같은 성적을 내는 일만이 꾸준함은 아니다. 팀이 요구하는 일이 달라져도 자기 몫을 찾는 것, 좋지 않은 날이 지나면 다시 준비하는 것도 그 안에 있다. 김용수의 선발과 마무리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야구는 마지막 아웃까지 봐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역전을 기대하며 한다. 김용수를 떠올릴 때는 그 반대편의 마음도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지켜 줄 선수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상대 팀 팬이었던 나에게도 이제 그 믿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은 전해진다.
기록 확인: KBO 공식 자료
이미지 출처
- 2017년 잠실야구장의 야간 경기 — Cyberdoomslayer, CC BY-SA 4.0.
- 잠실야구장 난간에 놓인 글러브 — Hyoshin Choi, Unsplash License.
- 김용수의 LG 영구결번 41번 도안 — Khans17, CC BY-SA 3.0.
-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 Mark Tegethoff, Unsplash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