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에서 KIA까지, 타이거즈라는 이름의 무게
해태 시절의 아홉 차례 우승에서 KIA의 2024년 우승까지. 광주와 호남의 야구, 시대를 건너온 타이거즈의 자부심을 살펴봅니다.
이름이 바뀌어도 이어지는 팀이 있습니다
KIA 타이거즈를 소개하면서 해태 이야기를 빼면 앞부분이 너무 많이 사라집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시작했고, 2001년 KIA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서로 관계없는 두 구단의 이야기를 합친 것이 아니라 같은 타이거즈의 역사가 이어진 것입니다.
오래된 팬이 무심코 해태라고 부르는 순간에는 예전 회사 이름보다 그 시절의 선수와 경기가 담겨 있습니다. 반대로 KIA라는 이름으로 처음 야구를 본 세대에게는 그 이후의 우승이 출발점입니다. 같은 팀을 응원해도 마음속 첫 장면이 다르다는 것이 오래된 구단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어느 기억이 더 옳다고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
광주와 호남의 팬들에게 타이거즈는 자기 지역의 이야기를 전국의 야구장에 전하는 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원정 관중석에서까지 이어지는 응원을 보면 팀과 연고지가 오랫동안 맺어 온 관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승 기록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해태의 강함은 한 시즌짜리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타이거즈는 1983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네 해 연속 정상에 올랐습니다. 해태 시절에만 아홉 번의 우승이 쌓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해태를 만나면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느꼈던 것은 막연한 인상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마지막 승부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준 기록이 뒤에 있었습니다.
김성한과 선동열, 이종범이라는 이름을 한 줄에 적을 수는 있지만 이들이 남긴 야구를 똑같이 묶을 수는 없습니다. 타석의 존재감, 마운드의 지배력, 그라운드를 흔드는 타격과 주루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압박했습니다. 해태를 단순히 근성 좋은 팀이라고만 부르면 그 선수들이 갖고 있던 뛰어난 기술과 경기 감각을 놓치게 됩니다.
특히 옛 강팀의 이야기는 정신력이라는 말로 너무 쉽게 설명되곤 합니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실제로 무엇을 잘했는지 살펴보는 편이 재미있습니다. 점수를 내는 방법, 리드를 지키는 투수, 실수를 줄이는 수비를 하나씩 보면 강함에 구체적인 얼굴이 생깁니다. 전설이라는 단어 뒤에도 매일 훈련하고 경기를 풀어 간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KIA의 우승은 다음 세대가 쓴 장면입니다
KIA라는 이름으로는 2009년과 2017년, 2024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추가했습니다. 해태의 아홉 번과 합하면 2024년까지 열두 번입니다. 이 숫자는 과거의 우승을 현재 이름으로 덮어 쓴 결과가 아니라 구단의 계보가 이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각 우승의 주역과 시대 배경은 구분해서 기억할수록 더 풍성해집니다.
2009년을 기억하는 팬과 2024년에 처음 우승을 본 팬은 서로 다른 선수 이름을 먼저 말할 것입니다. 그 사이 팀을 떠난 선수도 있고 새롭게 중심이 된 선수도 있습니다. 타이거즈의 특징은 과거의 강함을 이야기할 자료가 많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가 자기 시대의 우승을 실제로 더해 왔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전통은 선수에게 자부심이면서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전 선배들이 잘했다고 오늘의 신인이 곧바로 같은 결과를 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선수를 볼 때 과거의 누구와 닮았다는 말만큼 그 선수만의 장점에도 관심을 주고 싶습니다. 우승팀의 역사를 이어 간다는 것은 옛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해태의 아홉 번과 KIA의 세 번을 합쳐 말할 수는 있어도 선수들의 시대까지 한데 섞을 필요는 없습니다. 해태 시절 마운드를 떠올리며 선동열을 이야기하는 것과, 훗날 KIA 감독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는 것은 같은 사람의 다른 경력입니다. 옛 선수들의 사진을 찾아볼 때 유니폼과 시기를 함께 살피면 타이거즈의 역사가 더 정확해집니다. 선수로 남긴 기록과 이후에 팀을 맡은 시간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광주의 관중석에서 이어지는 기대
지금 타이거즈의 홈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입니다. 구장 이름에 들어 있는 챔피언이라는 단어가 이 팀에는 유난히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다만 그 이름이 매 경기의 승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좋은 시기와 어려운 시기를 모두 지나며 관중석이 다시 채워지는 모습에서 구단의 오래된 기반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 타이거즈를 보는 분이라면 우승 연도 표를 훑은 뒤 서로 다른 시대의 경기를 하나씩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선동열의 공을 중심으로 기억하는 야구와 이종범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기억하는 야구, 최근 우승팀의 야구가 얼마나 다른지 보입니다. 같은 유니폼의 역사 안에 여러 종류의 재미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팀을 응원해 온 제게도 타이거즈는 한국 프로야구의 중요한 기준점입니다. 이 팀을 이겼을 때 왜 유난히 기뻤는지, 지고 돌아선 날 왜 오래 아쉬웠는지 이해하게 해 주는 역사가 있습니다. 해태에서 KIA까지 이어진 이름의 무게는 그런 상대 팀 팬의 기억에도 남아 있습니다. 강한 라이벌이 있었기에 우리 쪽의 야구도 더 선명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 Kastrot, CC BY-SA 4.0.
- KIA 감독 시절의 선동열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광주MBC), CC BY 3.0.
- 2015년 야구 중계 기자간담회의 이종범 — acrofan.com, CC BY-SA 3.0.
- 야구 글러브의 앞면과 뒷면 — Jeremy Kemp,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