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 열전

장종훈, 처음의 평가보다 멀리 간 사람

연습생으로 시작해 홈런 타자의 기준을 바꾼 장종훈. 빙그레의 중심타자에서 한화의 영구결번이 되기까지, 출발보다 오래 남는 커리어를 돌아봅니다.

빙그레의 중심에 있던 이름

대전 한밭야구장

요즘은 한화의 옛 선수를 말할 때도 자연스럽게 한화라는 이름부터 꺼내게 된다. 그런데 장종훈을 떠올리면 내 머릿속에는 빙그레라는 이름이 먼저 지나간다. 오래된 유니폼과 대전의 야구장, 그리고 타석에 선 장종훈이다. 팀을 응원하던 팬이 아니어도 그 이름의 무게는 알고 있었다. 상대 팀의 중심타자를 기억한다는 것은 대개 마음 편하게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롯데를 응원하던 내게도 장종훈은 그런 선수였다. 타석에 들어오면 이번 공격이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홈런 타자는 안타를 여러 개 이어 놓지 않아도 경기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한 번의 스윙으로 점수판이 달라진다는 것을 장종훈의 이름을 통해 배운 팬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 예전 기록을 찾아볼 때도 그 긴장감이 먼저 생각난다. 통산 숫자를 다 외우지는 못해도 어떤 선수를 상대할 때 중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지는 남는다. 장종훈의 야구는 내게 그렇게 기억된다. 조용히 흘러가던 경기 한가운데에 굵은 선을 긋는 타자였다.

처음부터 정해진 스타는 아니었다

배트와 야구 글러브

장종훈의 출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연습생이다. 화려한 기대를 한몸에 받고 프로에 들어온 선수와는 다른 시작이었다. 지금의 끝을 알고 과거를 읽으면 모든 과정이 성공을 향해 곧게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때는 누구도 그의 통산 기록을 미리 볼 수 없었다. 입단 당시의 평가가 선수의 마지막 평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긴 시간으로 보여 줬다.

이 대목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마음에 남는다. 젊을 때는 연습생 출신 홈런왕이라는 말에서 극적인 반전을 먼저 읽었다. 지금은 그 사이에 있었을 평범한 날들을 생각하게 된다. 눈에 띄는 결과가 없는 날에도 다음 훈련을 하고, 어렵게 얻은 기회에서 다시 자기 몫을 해내야 했을 시간들이다. 그 구체적인 하루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가 하루 만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노력하면 누구나 같은 선수가 된다는 말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프로야구에는 열심히 하고도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이 많다. 장종훈의 커리어가 특별한 이유는 성공의 공식이어서가 아니라, 낮게 평가된 출발점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남겼기 때문이다.

홈런의 기준이 달라지던 시절

장종훈의 한화 영구결번 35번 도안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장종훈은 세 시즌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1991년과 1992년에는 정규시즌 MVP도 연이어 받았다. 한 시즌의 반짝 활약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다음 해에도 상대 팀이 먼저 경계해야 하는 타자로 남았다는 뜻이다. 야구를 보던 팬들에게는 장종훈의 타석 자체가 하나의 기준이 됐다.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한 시즌 40홈런을 넘긴 선수라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지금의 기록표에서 숫자만 보면 하나의 줄처럼 보이지만, 아직 아무도 넘지 못했던 선을 누군가 처음 넘는 순간에는 다른 무게가 있다. 어디까지 칠 수 있을지 모르던 타자가 실제로 그 너머를 보여 준 것이다. 팬들은 그다음부터 이전과 다른 숫자를 상상하게 된다.

나는 이런 기록이 야구의 시간을 나눈다고 생각한다. 그 전까지는 멀게 느껴지던 목표가 한 선수의 이름을 통해 구체적인 장면이 된다. 뒤에 더 큰 기록이 나온다고 처음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가 먼저 문을 열었는지는 기록표를 다시 펼칠 때마다 남아 있다.

장종훈이 오래 두 자릿수 홈런을 이어 갔다는 사실도 함께 읽고 싶다. 큰 한 해만 떼어 놓으면 강타자의 전성기만 보이지만, 여러 시즌을 이어 놓으면 오래 준비하고 버틴 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한 번 멀리 치는 힘과 여러 해 자기 자리를 지키는 힘은 닮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35번에 남은 긴 시간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장종훈의 이야기는 빙그레 시절의 홈런왕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화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팀에서도 그는 오래 뛰었고, 1999년에는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롯데 팬으로서 그해의 마지막 결과는 아쉽지만, 다른 팀 선수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까지 내 응원팀의 기분만 앞세울 수는 없다. 오래 기다린 선수와 팬에게 그 우승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하게 된다.

한화의 영구결번 35번은 그런 시간을 한꺼번에 불러온다. 처음의 신분, 중심타자가 된 시절, 팀 이름이 바뀐 뒤에도 이어진 경기들, 그리고 현역 생활의 끝이다. 어느 한 시즌의 상패 하나로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장종훈을 생각하면 홈런 개수와 함께 오래 한 팀의 역사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 프로에 들어왔는지를 말하던 이름이, 나중에는 얼마나 멀리 갔는지를 말하는 이름이 됐다. 나는 그 변화가 좋다. 야구를 오래 보면 좋은 출발을 한 선수가 늘 좋은 끝을 맞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시작한 선수가 언제나 뒤에만 남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종훈은 그 복잡한 사실을 하나의 커리어로 남겼다. 그래서 그의 옛 타석을 떠올리면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한 번 더 보게 된다. 첫 평가보다 훨씬 멀리 간 사람이 거기에 서 있기 때문이다.

기록 확인: KBO 공식 자료


이미지 출처

  1. 대전 한밭야구장 — ko:User:Prister, CC BY-SA 3.0.
  2. 배트와 야구 글러브 — Matt Benson, Unsplash License.
  3. 장종훈의 한화 영구결번 35번 도안 — Nudimmud, CC BY 3.0.
  4. 그라운드 위의 야구공 — Mark Tegethoff, Unsplash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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