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2020년대 한국 프로야구, 현재 진행형
하이라이트도 놓았던 팬이 롯데 5연승에 기뻐 게임을 만들었다. 마지막 우승을 본 고1 소년은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됐고, 둘째는 어느새 고2가 됐다.
80년대에는 어린아이였고, 90년대에는 학생이었다.
2000년대에는 사느라 바빴고, 2010년대에는 다시 야구를 보며 기대하고 실망했다.
그런데 2020년대를 쓰려고 하니 중간이 비어 있다.
어느 순간 야구를 놓았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서 안 보겠다고 결심한 기억도 없다. 그냥 어느새 안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몇 년은 야구 기억이 별로 없다.
하이라이트마저 보지 않던 시간
야구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롯데가 못해서였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먹고사는 일은 경기 시작 시간에 맞춰 끝나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튜브로 하이라이트를 봤다. 몇 시간짜리 경기를 짧게 줄여놓으니 그 정도는 챙길 수 있었다. 오늘 누가 잘했는지, 어떻게 이겼는지, 또 어떻게 졌는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도 안 보고 있었다.
야구 없이도 하루는 지나갔고, 다음 날에는 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롯데가 이겼는지 모른 채 하루를 끝내는 날들이 쌓였다.
한때는 타순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는데, 이제는 경기가 끝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팬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야구를 생각하지도 않던 때였던 것 같다.
작년, 그리고 올해 다시 켠 롯데 야구
그러다 작년인 2025년, 그리고 올해 2026년에 다시 롯데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면 좀 달라져 있을 줄 알았다.
똑같더라. 변한 게 없더라.
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서는 익숙했다. 조금 잘하면 기대하고, 이제 되는가 싶으면 내려앉고, 안 보겠다고 해놓고 결과를 확인했다.
물론 매일 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더 문제다.
며칠 잘하면 그동안 쌓인 불만이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가 싶은 마음이 또 생긴다. 오래 쉬었다 왔는데도 그 버릇은 금방 돌아왔다.
야구를 안 보던 동안 내가 많이 냉정해진 줄 알았다.
그냥 안 보고 있었던 거였다.
5연승에 기뻐서 게임까지 만들었다
롯데가 5연승을 했다.
기뻤다. 그 기분에 야구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 생은 야구다’는 그렇게 시작됐다.
프로그래머도 아닌 평범한 자영업자가 게임을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지금 생각하면 5연승의 영향이 꽤 컸다. 남들은 기분 좋게 하이라이트를 한 번 더 볼 때 나는 일을 하나 더 벌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게임을 만들고 나니 롯데의 가을야구는 아예 멀어졌다. 물론 내가 만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괜히 시기가 겹쳤다.
그래도 타이밍이 참 롯데다웠다.
나는 야구가 좋아서 할 일을 늘렸는데, 정작 롯데는 내 기대에 맞춰주지 않았다. 게임을 붙들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보면 한숨이 나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북항이였다.
부산 북항에 나타난 상어를 두고 팬들이 승리의 요정이라고 부르던 때, 롯데가 또 연승을 달렸다. 나도 북항이 덕분인가 싶어 웃었다. 상어가 경기를 뛰는 건 아니지만, 잘될 때는 그런 이야기까지 즐겁다.
나는 게임을 만들고, 상어는 북항을 헤엄치고, 롯데 팬들은 또 잠깐 행복해졌다.
참 여러 방법으로 야구를 보게 된다.
내가 고1이었는데, 둘째가 고2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웃고만 있을 수가 없다.
롯데가 1992년에 우승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몇십 년 뒤에도 다음 우승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갔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고 졸업하고 취업했다. 결혼했고, 아이가 태어났다. 직장을 그만뒀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내 생활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꽤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에도 갔다.
둘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롯데의 우승을 본 그때의 나보다, 지금 둘째가 더 나이가 많다.
이렇게 적고 나니 좀 이상하다.
나는 그사이 학생에서 아버지가 됐고, 아들은 내가 마지막 우승을 보던 나이를 지나갔다. 한 사람이 자라고, 가정을 꾸리고, 그 집의 아이가 다시 자라는 동안 다음 우승은 오지 않았다.
몇 년째 무관이라는 숫자로 들을 때와는 달랐다.
그 안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많이 들어 있었다.
2020년대 후반에는 볼 수 있을까
이제 2020년대의 후반을 바라본다.
롯데는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정말 달라질까.
좋은 선수가 나오고, 팀이 단단해지고, 가을에도 오래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라는 말 대신 올해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죽기 전에 한 번 더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요즘은 그 말이 조금 진지해졌다.
나 죽기 전에 롯데가 우승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고1이던 내가 두 아들을 이만큼 키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다릴 시간이 끝없이 남아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어릴 때는 내년도 있었고 그다음 해도 있었다. 올해 안 되면 다음에 보면 됐다. 그런데 어느새 그 다음들이 모여 이렇게 긴 시간이 됐다.
두 아들에게 옛날에 롯데가 우승했을 때 말이야, 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한 번쯤은 옛날이 아니라 오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늘 롯데가 우승했다고.
아버지가 고등학생일 때 봤던 일을, 너희가 이렇게 큰 뒤에 다시 봤다고.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직 끝을 쓸 수 없다. 80년대부터 여기까지 적어왔지만, 마지막에 쓰고 싶은 장면이 하나 남아 있다.
그날이 오면 이 글 뒤에 한 편을 더 붙이고 싶다.
제목은 길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롯데가 우승했다.
그 짧은 문장을 한번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