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야기

내가 기억하는 2010년대 한국 프로야구

조대홍갈을 기다리던 타석, 일본과 미국을 거쳐 돌아온 이대호. 열 팀으로 커진 리그와 다시 길어진 기다림, 끝내 먼저 우승한 NC를 바라본 롯데팬의 기억.

2000년대의 끝에서 나는 다시 야구를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로이스터의 NO FEAR 덕분이었다.

생활도 조금 자리를 잡았고, 롯데도 제법 야구를 했다. 이제는 볼 만한 야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2010년대를 돌아보면 처음과 끝의 표정이 꽤 다르다.

처음에는 올해 어디까지 올라갈까 생각했다.

나중에는 언제 다시 올라갈까 생각했다.

같은 올라간다는 말인데, 기다리는 사람의 기분은 많이 달랐다.

조대홍갈, 이름만 불러도 배가 부르던 시절

사직야구장의 관중석과 그라운드

조성환, 이대호, 홍성흔, 가르시아.

조대홍갈.

지금도 입에 붙는다. 타순이 늘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내 기억에는 그 이름들이 한 덩어리로 남아 있다.

누가 나가면 뒤에서 쳐줄 것 같았다. 앞에서 못 쳐도 다음 타자에게 또 기대를 걸 수 있었다. 점수를 먼저 줘도 타순을 한번 보고 마음을 달랬다.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도 칠 차례 온다.

늘 쳐주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기다릴 사람이 여럿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 시절을 롯데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되나 싶다.

우승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내 기억 속에는 늘 물음표가 붙는다. 롯데의 전성기(?). 다른 팀 팬이라면 웃을 수도 있지만, 8888577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충분히 좋은 시절이었다.

2011년에는 정규시즌 2위까지 올라갔고, 2012년에도 가을야구를 했다. 조대홍갈이 그대로 남아 있던 시절은 아니지만, 다시 강해진 롯데를 향한 기대는 이어졌다.

그 정도 야구는 계속될 줄 알았다. 좋은 시절에는 원래 그런 착각을 한다.

이대호가 떠나니 챙길 팀이 늘었다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의 이대호

2012년 이대호가 일본으로 갔다.

오릭스였다. 2014년에는 소프트뱅크로 옮겼고, 2016년에는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를 뛰었다.

롯데 4번 타자 하나 응원했을 뿐인데 일본 팀 이름을 익히고 미국 팀 소식까지 찾게 됐다.

이대호가 잘했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일본에서도 통하고, 미국 투수의 공도 담장 밖으로 보낸다니 괜히 내 어깨가 올라갔다. 내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내가 보낸 것도 아닌데 우리 선수라는 마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롯데 타선을 보면 허전했다.

잘해서 떠났으니 기쁜데, 잘하는 사람이 떠났으니 아쉬웠다. 팬의 마음이 그랬다. 더 큰 무대에서 잘하기를 바라면서도 우리 타순 한가운데 그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유니폼을 입어도 이대호는 이대호였다.

다만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를 보는 것과는 달랐다.

여덟 팀이 열 팀이 되는 동안

2015년 수원에서 열린 KT와 두산의 경기

그 사이 한국 야구의 지도도 바뀌었다.

2013년 NC가 1군 무대에 들어왔고, 2015년 KT가 합류하면서 열 팀이 됐다.

순위표가 길어졌고, 야구장이 늘었고,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특히 NC는 남의 동네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거제에 사는 나에게 마산과 창원은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야구를 볼 곳과 응원할 팀이 늘어난 건 반가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 응원팀이 바뀌는 건 또 아니었다.

사는 곳을 보고 새로 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진작 훨씬 편하게 야구를 봤을 것이다. 롯데 팬이라는 건 주소를 옮긴다고 같이 옮겨지는 게 아니었다.

새 팀들은 자기 역사를 써 내려갔다.

나는 오래된 팀의 다음 우승을 기다렸다.

돌아온 10번, 그리고 다시 길어진 기다림

사직야구장에서 롯데를 응원하는 관중

2017년 이대호가 돌아왔다.

일본과 미국을 돌고 다시 롯데였다. 오래 비어 있던 자리에 주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해 롯데는 정규시즌 3위를 했다.

또 기대했다.

이제 다시 시작인가 싶었다. 팬은 좋은 일이 생기면 그다음 좋은 일까지 미리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가을도 우승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이대호의 복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야구는 아무리 좋은 4번 타자가 있어도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2019년, 롯데는 10위가 됐다.

여덟 팀 시절에는 8위였는데, 열 팀이 되니 10위였다.

리그가 커지는 동안 굳이 맨 아래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었는데.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웃고 나면 씁쓸했다. 못할 때마다 화를 내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한동안 결과만 보고 넘어가다가도 며칠 잘하면 또 관심이 갔다.

그때는 우승을 못 해서 아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렇게 기대할 수 있었던 것부터 부러워졌다.

십 년의 끝에서, NC가 먼저 들어 올린 우승컵

NC 다이노스의 우승 기념 집행검 세리머니

이 이야기는 딱 한 해만 더 넘어가야 한다.

NC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2010년대가 끝난 다음 해, 2020년이었다.

새로 생긴 팀이라고 부르던 NC가 어느새 우승했다. 선수들이 우승을 기뻐하고 집행검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니, 신생팀이라는 말은 이제 어울리지 않았다.

잘했으니 우승한 것이다. 축하할 일이었다.

그런데 롯데 팬의 마음 한쪽에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갔다.

우리가 다음 우승을 기다리는 동안, 없던 팀이 생겨서 첫 우승을 했다.

롯데가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1984년도 있었고 1992년도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자꾸 길어졌다는 데 있었다.

NC가 먼저라는 말은 내게 그런 뜻이었다.

가까운 동네의 잔치라 반갑고, 부럽고, 우리 차례는 언제인가 싶었다. 그 세 가지 마음이 같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2010년대에는 참 많이 기대했다. 조대홍갈에게 기대했고, 해외로 나간 이대호를 응원했고, 돌아온 이대호를 보며 또 기대했다.

그 사이 여덟 팀은 열 팀이 됐고, 새로 온 팀도 우승을 배웠다.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쪽이었다.

그래도 조대홍갈을 떠올리면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우승은 못 했는데, 좋은 시절은 있었다.

롯데 팬의 2010년대는 그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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