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해태 그리고 삼성. 내 기억속의 80년대
1976년생 부산 야구팬이 기억하는 1980년대 KBO 이야기. 토요일 오후 TV 중계, 1984년 롯데 우승과 최동원·유두열, 해태와 삼성의 기억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
나는 1976년생이다.
내가 야구를 처음 본 건 국민학교 다닐 때였다. 그 시절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가방을 던져놓고 TV를 켜면 가끔 야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었다. 지금처럼 야구장이 온통 푸른 잔디인 것도 아니고, 내 기억 속 야구장은 그냥 흙바닥이 훨씬 많았다.
한 명은 공을 던지고, 한 명은 방망이를 들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멀찍이 서 있었다. 공 하나 던지고 멈추고, 또 던지고 멈추고. 축구는 사람들이 계속 뛰기라도 하는데 야구는 왜 저러고 있나 싶었다. 보다가 잠든 적도 많았다.
그게 내가 처음 본 프로야구였다.
부산에 살았으니 그냥 롯데였다
그때는 응원팀을 따로 정한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부산에 살았으니 롯데였다. 왜 롯데냐고 물어보면 딱히 설명할 것도 없다. 그냥 주변 사람들이 롯데를 봤고, TV에서 롯데 경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응원했다. 어느 순간부터 롯데가 점수를 내면 좋았고, 지고 있으면 짜증이 났다. 그 정도면 이미 팬이 된 거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이렇게 오래 갈 줄은.
1984년, 최동원
80년대 롯데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최동원이다. 당시에는 투수 운영이 어떻고 혹사가 어떻고 그런 생각을 할 나이도 아니었다. 그냥 최동원이 나오면 좋았다. 그리고 정말 자주 나왔다.
한국시리즈를 보면서도 계속 최동원이 보였던 기억이 난다. 어린 눈에도 이상했다.
'저 아저씨 또 나왔네.'
그런데 또 잘 던졌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당시 기록을 보면 더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기록보다 그냥 "롯데에는 최동원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 한마디면 됐다.
유두열의 홈런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또 하나 기억나는 이름은 유두열이다. 7차전에서 나온 그 홈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경기 전체 흐름을 자세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유두열이 홈런을 쳤고 롯데가 우승했다는 장면은 남아 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하이라이트를 바로 찾아볼 수도 없었다. 유튜브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고, 휴대폰으로 다시 볼 수도 없었다. TV에서 본 장면이 그냥 기억에 남는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몇몇 장면은 아주 오래 간다.
최동원.
유두열.
롯데 우승.
1984년은 그렇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앞으로도 롯데가 종종 우승하겠지.'
어린애 생각은 참 순수하다.
해태는 왜 맨날 우승하나
80년대 프로야구에서 또 강하게 기억나는 팀은 해태다. 검정색과 빨간색 유니폼. 어린 내 눈에는 좀 무서워 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맨날 우승했다.
정확히 몇 번 우승했고 어느 해에 누굴 이겼는지는 그때 몰랐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가을만 되면 해태가 있었고, 한국시리즈를 하면 해태가 나오는 것 같았다. 특히 선동열은 어린애가 봐도 특별했다. 상대 타자들이 제대로 못 치는 것도 보였다. 그래서 해태 경기를 보면 늘 비슷한 생각을 했다.
80년대의 해태는 내 기억 속에서 그냥 맨날 우승하는 팀이다.
삼성은 강한데 왜 자꾸 지지?
반대로 삼성은 조금 다른 이미지였다. 분명 잘하는 팀이었다. 선수들도 유명했고 늘 강팀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승은 못했다.
1984년에는 롯데에게 졌고, 그 뒤에는 해태에게도 맨날 졌다. 그래서 어린 내 머릿속에는 묘한 이미지가 생겼다.
삼성은 잘하는데 마지막에 지는 팀.
지금 기록을 보면 삼성이 얼마나 강했던 팀인지 알지만, 그때 내 기억은 그렇다. 프로야구를 기록으로 본 게 아니라 그냥 TV로 봤으니까. 어린애가 기억하는 야구는 대개 그런 식이다. 정확한 승률보다 장면이 먼저 남는다.
그때의 야구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게 봤다
지금 야구를 보면 숫자가 많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은 기본이고 OPS, WAR 같은 숫자도 본다. 투수 구속도 나오고 타구 속도도 나온다. 그때는 그런 걸 거의 몰랐다. 누가 잘 치는지. 누가 공을 잘 던지는지. 롯데가 이기고 있는지.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선수 이름은 더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최동원.
유두열.
선동열.
그리고 TV에서 자주 보던 여러 선수들.
처음에는 왜 저 재미없는 운동을 보나 싶었는데, 이름을 하나씩 알기 시작하니까 경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는 선수가 타석에 들어오면 보게 되고, 아는 투수가 나오면 보게 되고. 그렇게 야구를 배웠다.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야구
돌이켜보면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 프로야구는 꽤 단순하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켜던 TV. 흙바닥이 많이 보이던 야구장. 계속 공을 던지던 최동원. 홈런을 친 유두열. 검빨 유니폼을 입고 자꾸 우승하던 해태. 그리고 잘하는 것 같은데 마지막에는 자꾸 지던 삼성. 정확한 기록보다 이런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에는 야구가 지루했다.
그러다 롯데가 이기니까 보기 시작했고, 선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재미가 붙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다. 그리고 그때 시작한 롯데 팬 생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참 오래도 간다.